아로마테라피(Aromatherapy)의 정의: 제대로 알기!!
보통 아로마테라피 라고 하면 어떤 생각을 할까?
좋은 향이 나는 곳에서 마사지받는 것? 또는 좋은 향이 나는 오일로 마사지받는 것?
보통 아로마테라피를 연상할 때,
💆🏻 🧖🏻♀️
* 마사지숍, 피부관리실, 스파에서 받는 오일 마사지
* 라벤더나 유칼립투스 향 나는 방에서 눈 감고 누워있는 장면
* 향기 + 손으로 몸을 누르는 행위
* 피로회복, 감정안정 등 시원하다는 느낌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아로마테라피는,
🌿 Aroma(향기) + Therapy(치유, 요법)의 합성어이다.
어원은 그리스어로 향신료 (spice) 뜻하는 Άρωμα(아로마)에서 파생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프랑스 화학자인 르네 모리스 가테포세(René-Maurice Gattefossé)가 최초로 아로마테라피라는 용어를 만든 인물인데,
대표 저서로는 아로마테라피: 에센셜 오일과 식물 호르몬 <Aromathérapie: Les Huiles Essentielles – Hormones Végétales>(1937) 가 있다.
전설적인 사건의 발단으로 연구소에서 실험 중 화상 사고를 입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순수 라벤더 에센셜 오일에 손을 담갔고, 놀랍게도 극심한 통증이 완화되고 빠른 회복을 경험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향을 단순한 기분 좋은 냄새가 아닌 치유력 있는 의약적 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가 정의한 아로마테라피는 식물의 정유(에센셜 오일)를 이용한 치료법으로,
단순한 향기가 아니라 생리적, 약리학적으로 작용한다고 정의한다.
호르몬 조절, 항균과 항염 작용, 면역계 강화 등에 실질적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
실제로 후각은 변연계로 직통하기 때문에 우리가 향기를 맡으면 코 점막에 있는 후각 수용체가 감지하게 된다.
이 자극은 후각신경을 타고 대뇌변연계로 바로 전달이 되는데, 여기서 감정, 기억, 본능을 담당하는 영역들이 작동하게 된다.
편도체는 감정 처리(특히 불안) 역할을 하고, 진정 또는 자극 반응을 유도한다.
헤마는 기억을 형성하고 향기를 통해 회상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어릴 적 어디선가 맡아보았던 어떤 냄새들.
시상하부는 자율신경계와 호르몬 조절을 하기 때문에 향기에 따라 심박, 호흡, 체온, 식욕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
전두엽은 주의력과 사고력을 담당하고 있어 특정 향기로 집중력이나 인지기능 향상이 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향기는 의식 없이 뇌 깊숙이 도달하는 감각이며, 의도하지 않아도 감정을 바꾸고, 신체를 반응시키는 강력한 매개체 이기도 하다.
자료를 찾아보면 향기에 반응하는 뇌파실험이라거나 치매, 우울, 불면증과 관련된 논문도 찾아볼 수 있다.
🌿
아로마 테라피의 가장 중요한 전인적 치료: 몸과 마음은 하나
Soul + Body + Mind
명상이 떠오르긴 하는데, 매일 아침 명상을 하는 나로서는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에 어떤 의미인지 참 와닿는다.
만성적 질환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의 심신 불균형 회복 건강을 향상하는 데 있어 표면적으로 보이는 증상만을 다루지 않고 신체, 정신 그리고 감정을 모두 고려하여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생리적 증상, 심리적 문제, 주변 환경, 영양 조건 등 전체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히포크라테스의 명언 중에
“It is more important to know what sort of person has a disease than to know what sort of disease a person has.”
“어떤 질병이 있는가 보다, 그 질병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러하듯, 병 자체보다는 그 사람의 체질, 습관, 정신 상태, 생활환경 전체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즉, 전인적(Holistic) 접근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병도 자연의 흐름 안에서 이해해야 하고, 신체와 정신은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
아로마테라피의 역사는 굉장히 길다.
허브는 고대로부터 매우 신성하게 취급을 했고, '나무 연기'의 사용은 치료의 초기 형태로 발전했다.
종교적인 의식에서는 숭배 대상을 경외하기 위하여 방향 식물로 불을 피워 향을 내게 했으며, 악마를 물리친다고 믿어 신성한 장소에서도 향을 피우기도 했다.
기원전 55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수메르인 처방전, 식물 이름, 조제 방법 등을 점토판에 기록했고,
기원전 5000년경, 파키스탄의 북부, 아로마 오일을 증류하기 위해 도자기로 제작된 기계를 발견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도 아로마를 종교의식과 치료 목적으로 사용해 왔고, 침술과 마사지와 함께 질병 치료에 효과적으로 이용해 왔다.
기원전 2800년 신농 황제의 신농본초경에는 350여 종의 식물을 기록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자 🙊
🌺 향의 문명인 고대 이집트,
고대 이집트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향기를 단순한 ‘냄새’가 아닌, 신과 인간을 잇는 신성한 매개로 여겼다.
향은 종교의식, 의료, 미용,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도 가로지르는 존재였다.
이집트에서 특히 중요하게 여겨진 향료 중 하나는 미르(Myrrh, 몰약)이다. 미르는 향기로운 수지로, 강력한 방부력과 항균 특성을 지녔다.
이로 인해 사자의 시신을 보존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이렇게 몰약과 다양한 향료로 처리된 시신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미라(Mummy)’다.
즉, 향료는 죽음 이후에도 육체를 정결하게 유지하고 영혼이 안식하길 돕는 신성한 물질이었다.
‘카이피(Kyphi)’는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된 가장 상징적이고 신성한 향료 조합 중 하나로, 단순한 향을 넘어 의학, 종교, 치유, 예술이 결합된 ‘복합 향기문화의 결정체’였다.
Kyphi는 다음과 같은 재료로 구성되었다: 유향(Frankincense) 몰약(Myrrh) 시나몬(Cinnamon) 사이프러스(Cypress) 시더우드(Cedarwood) 꿀, 와인, 건포도, 유향수지, 바람에 말린 허브들 등 때로는 16~30가지 이상의 약초, 수지, 향료로 정교하게 배합하여 사용하였다.
Kyphi는 신전에서 신에게 바치는 향 제물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밤에 피워 숙면을 돕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정화·해독 기능까지 수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 자체로 아로마테라피의 기원적 형태라고 평가받는다.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는 정치적·외교적 수완만큼이나 향기의 전략적 사용으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향을 통해 외교적 협상과 유혹의 기술을 완성한 인물로 평가된다.
방 안을 로즈와 재스민 오일로 채워 로마 황제들의 감각을 장악했고, 항해 시 배의 돛과 돛대에 향을 뿌려, 접근하기도 전에 향으로 도착을 알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그녀는 ‘Kohl(콜)’이라는 자신만의 화장품 실험실을 운영하며, 기후와 피부 상태에 맞춘 맞춤형 화장품, 계면활성제, 스킨·헤어·네일 제품까지 개발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클레오파트라는 향기를 무기로 삼은 최초의 전략가 중 한 명이었다.
🕉️ 향과 생명의 땅 인도,
명상과 요가의 발상지인 인도는, 말 그대로 아로마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 나라다.
인도에서의 향은 단순한 향기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연기, 바람, 에너지 흐름의 상징으로서 종교의식, 치료, 정화, 미용의 도구로 수천 년간 사용되어 왔다.
인도에서는 향은 바람이고, 기도였다. 향료와 아로마 오일이 예배의식 속 연기(Smoke)로 사용되며 기도가 연기를 타고 신에게 닿는다는 믿음이 전해졌다.
즉, 아로마는 후각의 자극뿐 아니라 에너지 흐름과 영적 연결의 매개체로 기능했다.
기원전 3세기,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Ashoka) 치하에서 수많은 약용 식물이 조직적으로 재배·분류·기록되었고, 이는 이후 아유르베다와 서양 아로마테라피의 약용 기초 자원이 되었다.
기원전 2000년경, 인도의 가장 오래된 성전인 베다(Veda)에는 무려 700여 가지 방향 식물과 그 용도가 기록되어 있다. 이후 이 지식을 기반으로 한 의학 체계가 ‘아유르베다(Ayurveda)’로 정립된다.
Ayur = 삶, 활력, 건강 + Veda = 지식, 진리 → “삶을 유지하는 지혜”
아유르베다는 향기·오일·맛·에너지 흐름 등 오감 중심의 전인적 치유 시스템으로, 현대 아로마테라피의 뿌리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 체계로 여겨진다.
인도에서는 향이 ‘몸과 영혼을 정화하는 도구’로 여성 문화에도 깊이 뿌리내려 있다.
젊은 여성들은 결혼 6개월 전부터 마음과 몸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 자스민, 장미, 알로에 등을 블렌딩 한 Urgujja(우르고자/어쥬자)라는 향 연고를 사용하였다.
- 이 연고는 피부를 진정시키고 정서적 안정, 에너지 순환을 도우며
- 몸 전체에 발라 의식적 준비 과정으로 여겨졌다.
- 향은 단순한 향기가 아니라, 여성의 변화와 이행을 돕는 정신적 의식의 일부였던 것이다.
샌달우드(Sandalwood): 명상·명료성·신성한 공간 정화 / 자스민(Jasmine): 사랑·여성성·피부 안정 / 로즈(Rose): 감정 진정·마음 열기·심장 에너지 / 알로에(Aloe): 진정·보습·재생
이들은 오늘날에도 아유르베다와 아로마테라피의 주요 원료로 활용된다.
⚖️ 그리스, 아로마테라피를 본격적으로 메디컬용으로 사용한 나라
기원전 400년경, 이집트에서 향과 향수의 문화를 연구한 인물로는 역사학자 헤로도토스(Herodotus)와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us)가 있다.
그들은 향기의 의학적 가능성에 주목하며 그리스에 초기 의학 교육기관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 의사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 460~370)는 질병은 신의 저주가 아니라, 자연의 이치에 따른 결과라고 보며 치유를 위한 향기 식물의 활용을 권장하였다.
- 전염병이 유행할 때: 훈중(훈증 소독), 허브 찜질, 항균 허브 사용을 권함
- 예방적 건강 관리법: “아로마 목욕과 마사지를 일상화하라”
- 천연 항생제: 오레가노를 극찬
- 약초 활용: 이뇨 - 주니퍼 베리, 불면 - 스위트 마조람, 통증 - 페퍼민트 등 민트 계열
그는 약 400여 종의 약용 식물의 용도를 정리하였으며, 오늘날 본초학의 기초이자 아로마 치료의 철학적 기반이 되었다.
디오스코리데스(Dioscorides)는 로마의 군의관이자 네로 황제의 어의로 활동했던 약리학자이다.
- 대표 저서: <De Materia Medica (약물지)> 5권
- 약 600여 종의 식물에 대한 4,700여 가지 의학적 효능과 처방을 기록하였고,
- 이 책은 서양 본초학의 표준서로 1500년 이상 유럽과 아랍 지역에서 사용되었다.
- 세밀화와 분류 방식을 도입해 의약적 식물학의 기초를 확립하게 되었다.
테오프라스투스(Theophrastus, BC 371~287)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제자이자 ‘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철학자다.
- 그는 고대 문헌 중 최초로 향기 자체를 다룬 논문 <De Odoribus (향에 대하여)>를 남겼다
- 이 책에서 그는 향기를 단순한 쾌락이 아닌,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자연의 언어라 설명하였다
- 대표 저작 <De Causis Plantarum (식물의 원인에 대하여)>에서는 식물의 생장, 구조, 환경 조건에 따른 반응 등을 과학적으로 분류하였다
🌹 그리스의 의학적 지식과 이집트의 화려한 향유 문화의 로마!
그리스의 의학 지식과 이집트의 향유 문화를 받아들인 고대 로마는, 향과 치유, 사교와 권력을 결합한 고대 향문화의 절정기를 보여준다.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Claudius Galenus)는 서양 해부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로마 시대 검투사 훈련학교의 전담 의사로 활동했다.
그는 아로마 오일과 약초를 활용해 부상당한 검투사들을 치료하였고, 돼지나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해부 실험을 통해 서양 해부학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그는 또한 냄새의 인식 경로가 단순히 코에 머무르지 않고 ‘뇌’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제시했으며, 한쪽 뇌 손상이 반대쪽 신체 마비로 이어진다는 신경학적 인과 관계도 밝혀냈다.
로마는 특히 목욕 문화가 크게 발달하였는데, 목욕탕은 단순한 위생 시설을 넘어 사교, 정치, 사회복지의 중심지였다.
대표적인 예가 서기 260년경 건설된 ‘카라칼라 대중목욕탕’으로, 약 1,600명 이상 수용 가능한 거대한 공간에 아로마 에센셜 오일 사용 기록이 남아 있다.
목욕 의식은 정교하게 구성되었다
입장 전 아로마 마사지로 몸을 준비하고 - 온탕에서 땀을 배출한 후 - 냉탕에서 체온을 식힌 뒤, - 마지막으로 다시 아로마 오일로 마사지를 마무리하였다.
파티가 열리는 공간에는 벽면에 허브를 배치해 공기 정화를 도모했으며, 지금으로 치면 스프링클러와 유사한 장치에서 아로마 오일이 공중에 분사되기도 했다.
이는 아로마가 의료적·종교적 용도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미용과 향기 요법, 감각적 웰니스로 확장된 계기였다.
로마 황제 네로(Nero)는 로즈 오일을 두통과 소화불량 치료에 사용했으며,
특히 그의 아내의 장례식에서는 중동 지역 10년 치 로즈 오일 생산량에 해당하는 양을 하루 만에 소진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는 아로마의 치료적·의례적·과시적 기능이 공존했던 극적인 예로 평가된다.
로마의 번성과 함께, 아로마는 점차 치유와 위생의 도구를 넘어 향락적 소비의 상징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퇴폐적 이미지는 기독교가 부상하던 시기 로마의 도덕적 비판 대상이 되었고,
결국 의사들과 학자들은 쇠퇴해 가는 로마를 떠나 콘스탄티노플로 망명하거나, 향을 포함한 자연 요법들은 수도원 중심으로 제한적 전승되게 되었다.
🕌 아비세나의 시대가 열렸던 아랍에서는,
중세 아랍 세계에는 최고의 내과 의사이자 철학자였던 아비세나(이븐 시나, 980–1037)가 있었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처럼, 마사지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어 운동 전후에 유익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아비세나는 증류 기술을 혁신적으로 발전시켜 냉각 코일(쿨링 시스템)을 사용한 증류법을 완성하였다.
이 기술로 로즈워터, 로즈오일 등 고품질의 에센셜 오일을 단시간에 대량으로 효율적으로 추출할 수 있었다.
그는 “건강이란 신체와 영혼의 균형”이라고 정의하며,
향기가 이 균형을 맞추는 에너지적·약리적 중재자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아비세나는 약 45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하였고, 그중 240여 권이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의학정전(The Canon of Medicine)>은 약 600년간 유럽과 이슬람권의 의학 교과서로 사용되었으며,
당시의 의료 시스템과 대학병원 설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일종의 ‘중세 대학병원의 창시자’와 같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 그럼 중세 유럽으로 넘어가 보자!
11세기 십자군 전쟁 시기를 기점으로, 유럽은 아라비아와 동방의 의학·과학·향료 문화와 본격적으로 접촉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증류법, 향료 저장법, 의약적 허브 활용법 등이 유럽으로 전래되며, 이후 아로마테라피의 기틀이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한다.
12세기, 독일의 수도원이자 철학자, 의사였던 힐데가르트 폰 빙겐(Hildegard von Bingen)은 수도원 정원에 직접 약초와 향기 식물 300여 종을 재배하며, 이들의 치료적 용도를 정리한 의학서인 <Physica>와 <Causae et Curae>를 저술하였다. 그녀는 라벤더의 항균성과 진정 작용에 대해 서술한 유럽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으로, 중세 유럽 수도원 의학의 중심에 향기와 약초의 통합적 사용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14세기, 1347년부터 시작된 흑사병(페스트)의 대유행은 유럽 인구의 약 1/3을 사망에 이르게 했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향기 식물이 전염을 막아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 소나무, 로즈마리, 주니퍼 등의 향기 나는 식물을 거리에서 태워 공기를 정화하거나
- 허브 향주머니(포마더)를 목에 걸거나 의복에 넣고 다니며 전염 예방 도구로 사용하였다.
- 향의 연기와 강한 냄새가 공기를 정화하고 악령을 쫓는다는 신념과
- 실제 항균 효과를 일부 가진 허브들의 작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 시기 “향”은 단지 미용이나 기호의 대상이 아닌, 목숨을 지키는 생존의 도구로 여겨졌다.
14세기 중반, 역사상 최초의 알코올 베이스 향수인 헝가리안 워터(Hungarian Water)가 탄생했다.
이는 로즈마리 에센셜 오일을 알코올에 녹여 만든 향수로, 헝가리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위해 제조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이 향수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물”, “영혼의 물(Spirit of Hungary)” 등으로 불리며
- 향기와 함께 정화·회복·젊음의 비결로 여겨졌다.
- 오늘날의 오드 뚜왈렛(Eau de Toilette)의 기원으로도 평가된다.
🎨 중세, 르네상스 시대, 아로마테라피와 향의 르네상스
13세기 영국에서는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 예방을 위해 향기 나는 식물과 아로마 물질을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지독한 가죽 냄새나 오염된 공기를 완화하기 위해 에센셜 오일이 함유된 향주머니(포마더)를 옷이나 코 주변에 지니는 습관이 유행하였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자신의 의상과 생활환경에 향기로운 허브와 아로마 오일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고, 이는 당시 궁정 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향수 기술이 발전하면서, 메디치 가문은 아로마 성분을 활용한 향수를 프랑스 헨리 2세에게 선물하였고, 이를 계기로 이탈리아-프랑스 향수 문화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17세기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 시대부터 향과 아로마가 왕실과 귀족 문화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그라스(Grasse) 지방은 향기 식물 재배 및 향수 제조 산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이 지역은 품질이 우수한 아로마 오일의 대량 생산지로 자리 잡으며, 오늘날까지 전통적인 에센셜 오일 산지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 시기 영국의 본초학자 니콜라스 컬페퍼(Nicholas Culpeper)는 수백 종의 약용 식물의 의약적 특성을 기록한 저서를 출간하였다.
그는 기존의 라틴어로 쓰인 의학 서적들을 영어로 번역하여 대중화함으로써 식물 치료의 지식을 더 널리 퍼뜨리는 데 기여하였다.
🧬 정말 중요한 근현대, 아로마테라피의 쇠퇴와 부활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과학과 산업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에센셜 오일이 체계적으로 분석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세기에는 오일의 화학 성분을 분리·분석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졌고, 그 결과 에센셜 오일이 갖는 약리 작용 중 일부가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의약품 연구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의학계는 질병의 원인을 인체 내부의 불균형보다는 외부 병원균 등 외적 요인에서 찾는 경향이 강해, 오일의 전체론적 치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19세기 중반 산업혁명 이후, 제약 산업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이른바 ‘양약’이라 불리는 합성 의약품의 대량 생산이 본격화되었다. 이로 인해 아로마테라피는 한동안 의료 분야에서 주변화되고 쇠퇴하게 된다.
이는 천연 물질인 에센셜 오일이 강력하고 빠른 효과를 내는 합성 약물을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르네 모리스 가테포세(René-Maurice Gattefossé)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아로마의 치료적 가능성을 재조명한 인물이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부상병 치료에 라벤더 오일을 사용하며, 상처 치유와 회복 속도가 향상됨을 발견하였고, 이를 계기로 ‘Aromathérapie’(아로마테라피)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이후 그는 현대적 의미의 아로마테라피 개념을 정립한 저서를 남겼다.
이어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프랑스의 외과의사 장 발넷(Jean Valnet)이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타임, 레몬, 카모마일 등의 에센셜 오일을 살균 소독제 및 화상 치료제로 활용하였고, 그 효능을 입증하였다. 그는 특히 항생제의 부작용을 경고하며, 에센셜 오일이 육체적 치료뿐만 아니라 정신적 치유에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프랑스 생화학자이자 미용 전문가였던 마르그리트 모리(Marguerite Maury)는 아로마테라피를 피부미용과 정신 치유가 결합된 전인적 테라피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그녀는 에센셜 오일을 활용한 마사지 테크닉을 개발하고, 1950년대 영국 런던에 아로마테라피 클리닉을 개설하였다. 또한 그녀의 저서 <삶과 젊음의 비밀(The Secret of Life and Youth)>에서는 에센셜 오일의 심리·신경적 효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이후 CIDESCO의 교육과정에 아로마테라피 개념이 도입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현존하는 인물 중에서는 영국의 로버트 티서랜드(Robert Tisserand)가 대표적이다. 그는 1970년대부터 아로마테라피의 원리와 에센셜 오일의 안전한 사용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으며, 아로마테라피를 전인적 대체요법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Tisserand Institute를 설립해 국제적인 아로마 전문가 교육기관으로 성장시켰고, 저서 <Essential Oil Safety>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아로마 안전 가이드북으로 평가받는다.
🧉 우리나라(대한민국)의 아로마·허브 사용 역사
대한민국에서도 아로마와 허브의 활용은 고대부터 생활 속 자연요법의 일환으로 이어져 왔다.
전통적으로 약초, 향료, 연고, 목욕, 훈증, 음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식물성 방향 물질이 사용되었으며,
이는 서양의 아로마테라피와는 다른, 자연 중심의 생활 의학으로 발전해 왔다.
고대 - 고려시대,
- 삼국사기(1145, 고려 인종)→ 이는 쑥뜸, 마늘 정화 등 한국 전통 치유요법의 기원이었으며,
- 김부식이 편찬한 역사서로, 마늘과 쑥이 예로부터 귀중한 약용 식물로 쓰였음을 기록하였다.
- 고려시대 (10~13세기) 정향, 침향, 목향, 육두구, 몰약 등 향료를 종교, 의약, 제례, 궁중 향방 등에 적극 활용하였고,
- 송나라로부터 다양한 방향성 약재 수입: 정향, 침향, 목향, 육두구, 몰약 등 → 향료를 종교, 의약, 제례, 궁중 향방 등에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조선 시대,
- 동의보감(1596, 허준): 선조 때 완성 된 동양의학 백과사전에서는
- 탕액 편: 약물학 총론에서 회향(fennel), 정향, 향부자 등 방향성 약재의 처방이 기록되어 있으며,
- 향은 기운을 소통시키고, 담을 삭이며, 마음을 안정시키는 치료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 임원경제지(조선후기, 서유구)
- 농업·산림·약초·미용 등 생활 전반에 걸친 식물 응용법 수록되어 있고,
- 허브 및 방향성 약용식물의 실용적 사용법, 향기 응용의 흔적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현대: 1970년대 이후,
- 1970년대: 서양 허브 및 아로마 개념이 국내에 최초 도입되었는데, 이후 아로마 오일, 허브차, 천연 연고, 방향요법 등으로 발전하였다.
- 2016년: 국내 최초로 개똥쑥에서 에센셜 오일과 워터 추출 성공 하며, 향기 치료·면역 조절·항염증 목적 연구로 이어지며,
- 2019년: 토종 자원을 활용한 에센셜 오일 개발 시도
→ 수증기 증류법으로 테라피 등급 유자 오일 추출 및 상용화, 향후 자생식물 기반 천연 향료 산업으로 확장 기대하고 있다.
굉장히 긴 내용이었지만, 이런 거대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건강을 지키는 식물은 하나의 자연의 일부인만큼 아로마는 현재 한의학, 양의학 모두에서 보완의학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국민건강 보험공단에서도 대체의학의 한 분야로 아로마 요법을 재조명하고 있다.
특히 정신건강, 불면, 우울, 만성 통증 관리 등에서 임상적 활용도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하.. 평생 공부할게 산더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