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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물]HUMANISE: 더 인간적인 건축

preserverything 2025. 5. 31. 12:16

더 인간적인 건축 커버

다 읽고 덮어둔 지 몇 달은 된 느낌인데, 어제 갑자기 참여하게 된 책톡톡 모임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공유하고 싶어졌다.

개인적인 독서 후기로는, 
음.. 우선 책이 되게 헤더윅 스럽다는 느낌이었다. 책 내용을 떠나 디자인 구성에서 봤을 때 폰트 스타일이 달라지기도 하고, 글자가 여기저기 놓여있기도 하고, 가로로 읽다가 세로로 책을 돌려 읽기도 하는 흥미를 유발하는 부분에 있어서 그렇게 느꼈다. 
헤더윅은 흥미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한다. 흥미의 반대라고 칭하는 따분함은 몸서리치게 싫어함을 강조했다. 
흥미로운 건물이 인간적인 건축이라는 생각이다. 

주관적일 수 있기에 규정지을 수 없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건축은 무엇일까?
헤더윅은 조금 더 장식적인 부분에 대해서, 건물의 외관 형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물론, 내부는 특정 인원만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도시 측면에서 건물의 외부는 모두가 사용할 수 있고 영향을 받을 수 있기에 그런 부분을 지적하는 것 같다.

(또한 탄소 배출이라는 측면에서 환경적인 요소도 살짝 이야기가 나온다. 건물이 막대한 탄소 배출의 주범임은 확실하니까. 하지만 여기선 생략하겠음)

따분함: 평평하다, 밋밋하다, 너무 직선적이다, 너무 반짝인다
변주가 없는 건물에 대해서 지루해 한다. 상상해 보면 저 멀리 거대한 건물이 균일한 사각 패턴으로 되어있는데, 가까이 가도 그 사각 패턴이고, 더 가까이 손에 닿는데도 그냥 그 사각 패턴이고, 그 건물 옆을 걸어가는데 40미터를 걸어가도 계속 그 사각 패턴이면 공황이 올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건물은 그 나름의 의미와 디테일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흥미로움을 유발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도시는 더 풍요로워 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측면에서 그런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되려 이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여기다.

커튼월 건물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 중 한 가지

유리 외장재 즉, 커튼월 건물은 하늘을 비추고 있다. 마치 하늘로 착각하게 만든다.
새는 하늘인 줄 알고 날고 거기서 머리를 부딪혀 죽고 만다. 그 장면을 건물 안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서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가뜩이나 에너지 효율도 안 나오는 건물이고, 헤더윅이 말하는 그 지루한 패턴의 커튼월인데다가 심지어 새를 대량학살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또 한, 모더니즘의 거부감과 더불어 돈에 얽매여있는 사회적 이슈를 다루기도 한다. 성공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담과 함께 돈이 주는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임을 이야기하며, 21세기의 우리가 건물의 성공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지 질문을 한다. 
건물을 짓는데 들어간 비용의 크기 / 건물주가 벌어들이는 임대료의 크기 / 아니면 건물을 팔고 남은 차익의 크기 
그리고 이런 사진을 미리 공유 한다.

이랬는데 요래됐숩니당...

19세기 산업화, 20세기 부의 축적, 산업혁명의 대량생산 쓰나미, 점점 높게 지을 수 있게된 건축 공법, 그리고 세계 2차대전.
어마어마하게 파괴 된 주택과 급격히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할 수 있어야만 하는 집과 빠르게 지어야만 하는 환경.
모더니즘의 열망이 극도로 치닫던 그 때를 이야기 한다.
부동산과 설계+시공 일괄계약으로 시간과 돈을 우선하게 되어 빼앗겨 버린 창의력으로 모두가 효율성에만 집중하게 된 그 때의 허망함을 분노가 찬 상태로 쓴 글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돌아와 세계를 인간화 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제안한다. 
놀라운 다양성, 유동성, 역사성, 특이성 속에 살고 있는 한 종인 호모 사피엔스로서 우리의 세계를 반영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다양한 종이 살고있는, 지은 집 (귀여움)

끝없는 흥미로움과 다원성의 세계. 다르게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우리가 늘려야 할 것은 순응성이 아니라 창의성이다. 

인간화 원칙 
ACCEPT(인정): 사용자가 어떻게 느끼는지가 건물 기능의 핵심임을 인정하라.
BUILDINGS (건물): 천 년은 거뜬하리라는 희망과 기대로 건물을 설계하라. 
CONCENTRATE (집중): 건물의 흥미로운 특질을 문가2미터 안에 집중하라.

인간의 중요한 기능은 감정이라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필립스탁의 디자인이나 스티브 잡스의 디자인은 사용자에게 좋은 기분을 선사할 방법을 궁리하면서 결국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 속 사물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이 되는 점을 중요시 한다. 
필립스탁이 디자인 한 거미처럼 생긴 다리 3개짜리 금속 오브제인 레몬즙 짜는 것을 보았다면 약간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올 듯 하다. 
실용적이냐에 대해선 공감할 수 없을 지라도 예술과 산업의 경계를 흐리는 상징물이기도 하고, 디자인은 반드시 실용적이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 대표작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천 년은 거뜬하리라는 희망과 기대로 건물을 설계하라 이 부분이다. 
다양한 이유에서, 이미 건물은 짓는 것부터가 환경을 어마어마하게 파괴하는 게 싫어서이기도 하고, 오래된 건물을 보다 보면 그 오랜 세월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곳에서 묻어 나오는 묘한 세월이 나의 감정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이유에서 그렇다.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고유함을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구멍 난 곳을 고치기도 하고, 덧대어 꿰매기도 하며 그다음 세대가 그 세대에 맞게 고쳐나가는 그 세월의 흔적이 좋다. 음.. 쉽게 볼 수 있는 것 중엔 성곽이 떠오른다. 그 시대의 공법과 돌로 만들어 색도 모양도 다르게 적층 되어있는 시간의 흔적 같은 것.

그리고 헤더윅 작품중에 심장이 두근거렸던 곳

헤더윅이 곡물 저장고 였던 곳을 재탄생 시킨 현대미술관. 
낡은 산업유산을 예술적 공간으로 탈바꿈 시킨 혁신적인 작업이었는데,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곡물 저장고였던 이 곳은 도심 속 흉물로 자리하고 있었다. 헤더윅은 과거의 구조를 파괴하지 않고, 그 안에 새로운 삶을 불어넣고 싶다는 의도로 구조 자체를 재해석해서 빡빡한 원통 콘크리트 구조를 조각하듯 파내어 재탄생 시킨 장소이다. 

단단하게 만들어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천년은 거뜬한 건물이지 않을까? 

토마스 헤더윅 전시회에서 찍은 사진들

어쩌면 편협한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던 책이었지만, 오래간만에 즐겁고 흥미롭게 후루룩 읽었던 아주 두꺼운 책이었다.
오래 살아주세요 헤더윅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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